[쿠바에서] 두 가지 속임수
며칠 전엔 멕시코의 칸쿤에 다녀왔다. 세계적인 휴양도시라는 그 곳에 운 좋게 다녀올 수 있었던 것은, 운 나쁘게도 아직 쿠바 거주증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알고 있었던 것과 달리 관광비자는 한 달 동안만 유효하고, 연장하려면 다른 나라로 나갔다가 들어오면서 다시 사야한다. 아바나에서 칸쿤까지는 한 시간 밖에 안 걸리지만 내가 언제 또 칸쿤에 오겠냐 싶은 마음에, 어쩔 수 없이 내몰린 휴양지지만 신나게 하루를 보내고 아바나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아바나에 도착하니 마치 집으로 돌아온 듯 사뭇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칸쿤의 해안은 내가 이제껏 본 중에 가장 아름답다고 할 수 있는 곳이었지만 한 달간 머물러 꽤 익숙해진 아바나가 나에게는 훨씬 편안한 곳이 된 것이다.
세월이란 것이 참 묘하다. 솔직히 쿠바에 온지 얼마 안 되었을 땐, 할 수만 있다면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큰소리치며 떠나온 내 자존심이 무너지고, 쿠바에서 나를 도와준 분들에 대한 신뢰가 깨지고, 내가 참으로 우스운 사람이 될 지라도 돌아갈 수만 있다면 가고 싶었다. 그런 마음이었다. 머리가 아니라 마음. 마음은 이질적인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질적인 것이 우리를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이질적인 것을 우린 얼마나 배척하는지 나는 요즘 몸소 느끼고 있다.
스페인어를 처음 배울 땐 재미있고 실력도 빨리 느는 것 같이 느껴졌는데, 어느 정도를 넘어가 해도 해도 늘지 않는 것 같을 땐 ‘아니, 내가 지금 이걸 왜 배우고 있어야 하지?’하는 생각이 들면서 당장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불쑥 불쑥 솟는다. 마음이란 그런 식이다. 물론 이성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계속해서 ‘새로운 것’과 ‘다른 것’을 배우고 나의 세계를 넓혀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마음은 몹시 힘들다고 투정을 부린다. 편하게 살고 싶다고 한다.
그만큼, ‘다르다’는 것은 우리에게 힘들다. 때론 충격을 준다. 충격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충격적이어서 쉽사리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번엔 그, 너무도 달라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내가 제일 궁금했던 것이 바로 ‘쿠바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오자마자 보이는 것은 숨길 수 없는 빈부의 격차, 공급이 따라가지 못해서 덜해 보일 뿐, 자본주의 사회와 다름없이 팽배한 소유와 소비의 욕구였다. 평균 월급이 2 0CUC 정도라고 하니 20달러도 채 못 되는 돈이라는 얘기인데, 교육과 의료가 무상이고 달걀, 우유, 쌀, 감자, 등 기본 식품과 비누, 치약 등의 생필품을 배급받는다. 완전히 무상은 아니고 ‘리브레타’라는 배급표를 통해 극히 저렴하게 구입한다. 수도 전기 등 공공요금이 한국보다 저렴하고 집세 등이 나가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해도 그 평균 월급은 말이 안 된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왜냐면 쇼핑센터와 레스토랑에서 이들 월급으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물건들을 사고 음식을 시켜 먹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으며, 거리에선 이들 월급으로는 도저히 유지할 수 없는 자동차를 몰고 다니는 쿠바인들을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쿠바 정부에서 제공하는 물자와 평균 월급으로 살 수 있는지 없는지 혹은 그 월급이 합리적인가를 내가 말할 수는 없다. 쿠바 국민으로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체 게바라가 쿠바에 살 당시에도 어떤 친구가 물자가 부족하다고 불평을 했더니, “이상하군. 우리 집은 부족하지 않게 살고 있는데”라며 오히려 자기의 리브레타를 나눠주었다는 일화가 있다.
서울에 살았을 때 우리 집보다 훨씬 수입이 많은 친구네보다 오히려 연극쟁이 수입으로 사는 우리 집이 더 여유 있게 생활했던 것을 보면, 생활을 어떻게 꾸려나가느냐 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사교육비를 들이지 않으면 사는 데에 훨씬 여유가 생긴다. 따라서 내가 쿠바인들의 평균 월급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다만, 다수의 쿠바인들이 (쿠바 전국을 다녀보지 않았으니 아바나 시민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그들의 월급에 비해서 훨씬 넘치는 소비생활을 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즉 어디에서 그런 돈이 생기냐는 것이다.
기회가 닿는 대로 쿠바 친구들에게 물어보고, 또 이곳에서 오래 지낸 한국인들에게 물어보았다. 도대체 그 월급으로 어떻게 이런 생활이 가능한 것이냐고. 모두들 비슷한 대답을 해주었는데, 물론 쿠바 친구들은 구체적인 방법에 있어서는 직접적인 언급을 피했지만, 국가에서 정해준 월급만으로는 도저히 살 수 없으며 따라서 어떤 다른 방법으로 돈을 벌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우선 쿠바는 사회주의 국가이므로 개인이 어떤 사업체나 기업, 구멍가게도 소유할 수 없다. 원칙적으로 모두 국가의 소유이고 모든 국민은 각 회사나 일터에 고용될 수 있을 뿐이다. 외국계 회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우선 외국 자본이 쿠바에 투자를 하려고 해도 반드시 쿠바 정부가 50%이상의 지분을 갖게 되어 있고 현지인을 고용하려고 해도 반드시 쿠바 정부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고용된 쿠바인들의 월급도 회사가 직접 지불할 수 없고 회사가 정부에 임금을 지불하면 정부가 다시 그 사원들에게 월급을 주는 식이라고 한다. 물론 회사가 정부에 내는 1인당 임금은 정부가 사원들에게 주는 평균 임금 20CUC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정부가 세금 비슷한 명목으로 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쿠바인들은 외국인과 관련된 일이나 외국 관련 회사 혹은 관광업 분야에 종사하기를 강력하게 희망한다고 한다. 왜일까? 어차피 정부가 정해준 월급은 어떤 일에서나 같을 텐데 왜 특별히 그런 일들을 선호한단 말인가?
그 이유를 알게 되었을 때 나에게는 정말 충격이었다. 믿고 싶지 않을 만큼 충격적이었다. 쿠바인들이 관광이나 외국 관련 업종에 종사하기 원하는 것은 그런 업종에서는 빼돌리기, 즉 도둑질을 더 많이 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외국 관련 업종이든 쿠바 국내 업종이든 모든 일터에서 많은 쿠바인들이 (누군가의 표현에 의하면 ‘IQ 10이 아니라면’) 속임수와 도둑질을 통해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개인 대 개인으로 남의 것을 도둑질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물건 즉, 국가의 재산을 도둑질하는 것이다. 사실 내가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믿지 않았다. 내게 얘기해준 분이 개인적으로 사회주의에 대한 편견이 강해서 나쁘게만 바라보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실상을 확인하고 싶어서 쿠바 친구들에게 자세히 물어보았을 때, 그들 역시 쿠바 사회가 비현실적인 임금 때문에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고,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이나 적어도 선호도 같은 것은 전혀 상관없이 모든 이들이 조금이라도 돈을 더 벌 수 있는 일을 찾는다고 했다.
예를 들면 학교 교장 대신 개인 과외, 의사 대신 Dolce(달콤한 케이크 류) 장수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이런 사실이 믿기지 않았고 믿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에 다시 여러 차례 확인을 했다. 그러나 다른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배급되는 것 외에 식품을 사고, 상품을 사려면 속임수를 쓰고 도둑질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고, 가끔 좋은 레스토랑에서 외식을 하고 자동차까지 소유하려면 권력의 연줄을 이용해서 엄청난 도둑질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충격적이었다.
물론 도둑질을 하지 않고도 웬만큼 살 수 있는 예외도 있기는 하다. 미국으로 건너간 친척이나 가족이 보내주는 원조금을 받는 경우, 나와 딸에게 스페인어를 가르치고 있는 일레아나나 민박집을 경영하는 글라디스 같이 외국인을 상대로 직접 거래하는 경우, 도둑질 없이 사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쿠바 고용인들이 뒤로 도둑질 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정부가 주는 임금 외에 따로 충분한 돈을 주는 외국계 회사에서 일하는 경우, 도둑질을 하지 않아도 살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몇 가지 경우를 제외한다면, 대다수의 아바나 시민들은 자신이 일하는 직장에서 취급되는 물품을 빼돌리고 바꿔치기하고 뒷거래하는 등 온갖 방법과 수단을 동원해서 생활비를 벌고 있다고 한다. 이런 행위를 ‘인벤따’, 즉 발명이라는 말로 부른다고도 한다. 너무도 오랜 기간 동안 비현실적인 월급을 받다보니 누구나 그런 방법을 터득하게 되는 것이고, 모두들 그런 거짓말과 도둑질을 묵인하고, 오히려 그런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바보가 되는 것이며, 능력 없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그런 속임수를 행하면서도 조금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그런 방법으로 돈을 벌어 살아온 부모들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어떤 사람으로 성장할 것이며, 도대체 그런 사람들로 가득 찬 이 나라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냐고, 게다가 매일 직장에서 더 좋은 속임수를 생각해내고 어떻게 훔칠 것인가를 도모하면서 사는 삶이 과연 행복할 수 있겠냐고, 나는 분개했다.
그런데 분개하면서도 마구 헷갈렸다. 빈민굴 혹은 할렘이라고 할 수 있는 센트로 아바나를 가보면, 그 너저분함과 더러움과 열악함의 거대한 집합체가 오히려 관광의 한 코스가 될 만큼 인상적인데, 그렇다면 그들은 속임수와 거짓말을 못하는 사람들이라서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일까? 만일 내가 그런 빈민굴에서 태어나 자라났다면, 거짓말과 속임수를 써서라도 그 곳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을까? 아마도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 정당화하지 않았을까? 국가가 나에게 충분한 월급을 주지 않으니 내가 알아서 국가의 것을 가져가겠다는데 뭐가 문제냐고.
충격은 오래 갔다. 그리고 그만큼 생각이 길어졌다. 속임수로 영위되는 이들의 삶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우리도 속임수에 기초하여 살고 있기는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었다. 다만 그 속임수가 너무도 거대하여 눈에 보이지 않고, 너무도 그럴싸하게 포장되어 있어서 마치 거짓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쉬운 예를 들어, 광고만 보아도 그렇지 않은가? 초고가의 외제 화장품을 쓰는 게 분명한 여배우가 광고에서는 중저가의 화장품을 애용하는 것 마냥 선전하여도 우리는 그것을 거짓말이라고 분개하지 않는다.
아파트 광고에 표현되는 유럽의 궁전 같은 이미지와 우아한 파티를 진짜라고 여기지 않으면서도 그 광고의 허위성에 대해 딱히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의례히 광고란 그런 과장과 거짓 이미지로 치장되기 마련이라고 봐준다. 아니, 봐주는 정도가 아니라, 그런 광고의 속임수에 자연스럽게 현혹된다. 오히려 한물간 연예인이 직접 먹어보고 맛있다고 선전하는 동네 음식점 광고를 볼 때에는 촌스럽다고 비웃는다. 나도 그랬다. 비단 광고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수많은 그리고 거대한 속임수에 기초하여 살고 있다. 가장 중요한 일을 가장 하찮은 일이라고 믿게 만들고, 하등 쓸데없는 일을 가장 멋있고 좋은 직업이라고 믿게 만드는 속임수, 진정으로 아름다운 것을 무시하고 자본의 논리에 충실한 것을 아름답다고 느끼게 하는 속임수, 게으른 것과 삶을 누리는 것, 부지런한 것과 삶을 소모하는 것의 차이를 분별하지 못하게 하는 속임수, 자식을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게 함으로써 성공시키는 것이 곧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믿게 만드는 속임수 등 정말 생각해보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속임수에 지배당하여 살고 있다.
게다가 우리가 갖고 있는 속임수들은 이들의 속임수와 달리 너무도 교묘하고 정교해서 속임수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데에 더 큰 문제가 있다. 적어도 쿠바 사람들은 ‘당신들은 속임수를 쓰고 있는 거 아닙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그렇다고 인정은 할 것이다. 좀 그러면 어떠냐고 항의를 할지언정 자신들이 속임수를 쓰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우리에게 ‘당신들은 속임수로 살고 있습니다.’라고 한다면 어떻게 반응할까? 아마도 우린 인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인식하지 못할 만큼 치밀해진 조직적 속임수 속에서 우리는 속임수 중에서 가장 나쁜 속임수, 즉 스스로를 속이는 상황에 처해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가진 능력만큼 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우리는 충분히 결백하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지만, 사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들이 모두 선하고 좋은 일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수요가 있다고 해서 그 일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일은 아니며 떳떳한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아주 극단적인 예로 청부살인업자가 ‘내 능력만큼 돈을 벌고 있으니 정직하게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쓸데없는 소비와 낭비를 부추기는 일, 자연을 훼손시키는 일, 쾌락은 주지만 건강을 해치는 일, 비판능력을 마비시키고 사람을 멍하게 만드는 일, 편리함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게으르게 만드는 일 등 많은 일과 직업이 필요에 의해 생겨났지만 좋은 면보다는 나쁜 면이 훨씬 더 많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직업이나 행위가 이웃과 사회에, 사람과 자연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쉽게 알거나 느낄 수 있는 경로를 차단당했기 때문에 느끼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오히려 그렇게 차단해준 무언가에 은근히 고마워하면서 괜찮다고, 잘 살고 있는 거라고, 때로는 눈을 감고 때로는 귀를 막고 때로는 생각을 마비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속임수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모두가 합심하여 만들어내면서도 인식하지 못하고 오히려 거기에 의지하여 사는 거대한 속임수와, 불법인 걸 알면서도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며 저지르는 개개인의 속임수, 이 두 가지 속임수에 대해 생각해본다. 거대한 속임수 속에서 살았던 나는 이곳에서 벌어지는 작은 속임수에 충격을 받았다.
이런 거짓말은 내가 한 번도 해본 거짓말이 아니며, 이런 속임수를 쓰는 사람은 이제껏 본 적이 없다는 이유로, 즉 이곳의 속임수는 내가 살던 곳의 속임수와 ‘다르다’는 이유로 손가락질을 했었다. 충격이라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호들갑을 떨었었다. 하지만 내가 쿠바를 손가락질 했던 잠시 동안, 나는 ‘거대한 속임수에 의지하면 오히려 작은 속임수는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최명숙/ 희곡작가·쿠바 아바나 한글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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